[원송차이코리아 이대연 칼럼] 무에타이의 역사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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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송차이코리아 이대연 칼럼] 무에타이의 역사 ⑤
  • 이대연 원송차이코리아 대표
  • 승인 2018.07.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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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타이의 시작과 발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아본다.
사진=eagle Muaythai 제공
사진=eagle Muaythai 제공

 

[파이트타임즈] 무에타이는 1,0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고대 태국왕조로부터 내려온 무에보란의 역사부터 동남아시아 지역의 오랜 분쟁을 걸쳐 근·현대의 무에타이로 거듭나기까지 매우 복합적이며,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 수코타이 왕조는 고대 태국왕조.

수코타이의 전설에 따르면 당시 수코타이에는 예언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이 비석은 수코타이가 인접국가와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예언비석에 대한 당시 태국인들의 신앙심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수코타이의 병사들은 칼과 창 같은 무기를 다루는 법과 전장에서의 근접전을 위한 맨손 격투술을 훈련했다. 

그렇게 킥, 펀치, 니킥, 팔꿈치 등의 맨손 격투 기술들로 구성된 고대 무에보란의 람무아이의 체계가 잡혀나가기 시작했다. 

 

 

포쿤 람 캄행 대왕 때 수코타이는 태평성대 기간이였으며, 그 기간 동안 군대에서나 왕실에서 무에보란은 교육과정의 일부였다. 젊은이들은 이 기간에 무에보란을 자기수양 및 호신의 목적으로 수련 했다.

아유타야 왕조는 수코타이 왕조와 공존했다. 수코타이는 지금의 태국의 북쪽에 왕조가 설립 되었고, 아유타야는 중부에 설립된 왕조였다. 하지만 람 캄행대왕 사후 기울어져 가는 수코타이를 아유타야가 복속시켰다.

아유타야 시대에는 버마(미얀마), 캄보디아 등 주변 국가들과 잦은 전쟁이 특징인 시대였다. 

그로인해 무에보란은 정신수양 보다 호신의 목적으로 수련 되었다. 이러한 기술들은 연륜 있는 스승들이 주로 전수했다. 무에보란의 수련법은 왕궁을 벗어나 일반대중들에게도 전파되었다. 

당시 무에보란 훈련소에서는 고리버들 나무로 만든 막대기 검으로 검술을 수련했다. 또한 맨손 격투법도 수련했는데, 이것이 람무아이, 즉 오늘날의 무에타이다.

 

◆ 라타나코신 시대(현 짜끄리 왕조)부터 무에타이를 태국의 국기로 규정

라타나코신 시대(현 짜끄리 왕조)부터 무에타이를 태국의 국기로 규정했으며, 공식규칙과 여러 규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라마 2세때(1766~1824)부터 무에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라마 5세때(1853~1910) 뛰어난 기량을 갖춘 낙무아이들을 선발해 왕궁정원에서 경기를 하도록 했다. 

 

 

1887년도에는 왕실산하 태국 교육부를 설립하여 무에타이를 교육사범대 체육교육과의 과정으로 편입시켰다. 이 시기는 흔히 근대 태국 무에타이의 황금기라고도 불린다. 

라마 7세때(1893~1941) 데파사딘 장군은 종전 후에 태국에서 자신의 프로 무에타이 경기장을 설립했다. 그리고 1929년도에는 태국정부에서 일시적으로 국내 낙무아이들에게 복싱 글러브 착용을 의무화시켰다.

※ 카드뉴스 제작지원= 카드뉴스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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